39. 한의학의 원리. 5. 사외췌내. 司外揣内
2400 여년 전에 편작(扁鵲)이라는 의사는 사람을 쳐다만 보고도 CT나 MRA를 찍듯이 오장육부를 훤히 들여다보았다고 알려진다. 이렇게 겉모습만 보고 병을 아는 것을 신(神)이라고 했고, 물어보고 아는 것을 공(工)이라 했으며, 맥을 보고 아는 것을 교(巧)라 하여 의사의 수준을 나누었다. 이렇게 겉에 드러난 현상을 관찰하여 내부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司外揣内)은 한의학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진 진단법(四诊;望闻问切)인데,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5가지 빛을 보고 무슨 병인지를 아는 것을 망진(望診)이라 하고, 5가지 맛 중에 좋아하는 것을 물어 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것을 문진(問診), 맥을 집어 장부별 허실과 기혈의 흐름을 알아내는 것을 맥진(脈診)이라 한다.
“맥도 모르면서 침통 흔든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용도 모르고 함부로 덤빈다는 뜻으로 쓰인다. 침은 경맥과 경락을 조절하는 일종의 기치료법이기 때문에 맥진을 통해 기혈의 흐름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놓는 침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양성된 침구사들은 대개 아시혈(아픈 부위)이나 경락을 따라 피부 침 정도로 시술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황제내경에는 맥진 법에 대해 아주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필자의 경우 하루에 백여 명씩 일 년이 넘게 맥을 잡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일부가 체득이 되었다.
수많은 의료용 진단기구가 이용되는 현대사회에서 겉을 보고 속을 아는 지혜를 갖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청진기 하나로 심장의 문제를 정확히 잡아내는 심장 전문의는 더 이상 만나기 힘들다. 편작과 동시대의 서양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의술을 하기 전에 영혼을 먼저 진단하라”라고 했다. 얼굴빛과 혀를 보고, 물어보고, 맥을 잡아보면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의학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낮은 마음 한의원 원장 김진만